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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해외] 사우디에선 ‘노예’, 독일에선 ‘갇힌 신세’

무슬림사랑 2018-06-07 (목) 17:26 2개월전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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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말하기>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베를린의 정치그룹 국제여성공간(IWSPACE, International Women Space)이 제작한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으로, 이주여성과 난민여성으로 구성된 팀이 다른 난민여성들을 인터뷰하여 1인칭 에세이로 재구성한 것이며 하리타님이 번역, 해제를 달아 소개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는 노예와 같다고 느꼈고, 독일에서는 갇혀버렸다”(In Saudi Arabia I felt like a slave, in Germany I am trapped) 편의 화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남자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벽을 본다. 내 방 창문을 통해 보이는 벽이다. 중요한 물건들은 항상 가방에 싸 둔다. 알디(슈퍼마켓 체인)에 갈 때마다 내게 필요할 만한 물건이 있나 찾아보지만 사지는 않는다. 독일 당국이 나를 강제 송환할 때 뭘 많이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종교국가이자 독재정권이 다스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 의회가 있고, 여자들도 운전할 수 있고, 남녀가 같이 일하는 직장이 있는 이란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사우디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집단으로 항의할 수 없다. 모두가 혼자 항의한다. 집회나 결사는 범죄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무척 외롭다. 이란인도 아프간인도 아닌 사우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지내본 경험이 없다. 사우디에서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선 남자는 시민이고 여자는 노예나 마찬가지다. 여성이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려면 남성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 내게 방을 빌릴 돈이 있다 해도, 내 이름으로 계약할 수 없다. 문서에 서명을 하려면 언제나 남자가 필요하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나 마찬가지다. 운이 좋으면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남자들은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나를 직장에서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손쉽게 말할 수 있다. “그만하면 됐어.”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나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놓았다. 어머니와 의논조차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상상해보라! 아버지는 그저 그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였다. 어머니는 몇 년 동안이나 나를 못 만나고 지냈다. 만약 어떤 여자가 어머니와 쭉 함께 살며 학업과 취업, 결혼과 이혼 다 거쳤는데, 어느 날 아내 넷을 둔 아버지가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책임지라고 하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혹은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그 여자의 아버지는 말한다. “아니, 안 된다.” 이미 기혼인 상태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편의 가족을 좋아하지 않는 오빠가 그 여자에게 이혼을 명령할 수 있다.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어도 오빠가 주인이다. ‘좋은 노예’로 살아야 한다. 남자들은 그들 뜻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알던 21살의 한 여성은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2003년 개혁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정부는 처음 몇 년 간은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꾸고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정부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사우디에선 내게 아무런 기회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이슬람교 신자도 아니다. 돌아가서 계속 노예처럼 살아야 할까봐 겁이 난다. 나는 이미 떠나왔는데, 지금 돌아간다면 정부는 내 여권을 보고 내가 몇 년 떠나있었음을 문제 삼을 것이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들은 우리 가족을 모욕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나 레바논 같지 않다. 날 체포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목이라도 잡아내면, 나도 벌을 받고 우리 집안 남자들도 받을 것이다. 여성인 나는 인간이 아니고 따라서 책임의 주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다른 이들도 함께 처벌한다. 가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떤 것도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집안 남자들이 처벌받길 바라지 않는다면 여자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강인하다. 집회를 하다 잡혀도 또 다시 모인다. 그 외 보통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사우디 남자가 사담 후세인 시절에 이라크에 갔다가 비행기 납치 사건(9.11테러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붙잡힌 적이 있다. 경찰이 그 남자의 아버지를 찾아가자, 아버지는 “나는 이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우스운 것은 사우디 정부가 ‘인권’을 운운한다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상대로 그럴까? 




나는 자유를 원했지, 갇혀있길 원한 게 아냐

 

여기 오기 전에 나는 인권에 대해 논하는 곳이라는 제네바(스위스)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나는 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로 갈까 생각해봤지만, 거긴 해가 잘 안 뜬다. 독일에는 햇살이 좀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자유를 원했고 안전한 장소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내게 지옥이다. 더 이상 독일에 있고 싶지 않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나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여기서는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만 있고 그 다음에는 인도나 아프리카 어딘가로 가고 싶다. 거리에서 잘 각오도 되어있다.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었지만 항상 갇혀있길 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게 무섭다. 나나 우리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 아마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들을 못 볼 지도 모른다. 여기 온 이래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잃기만 했다. 전에는 우리나라에 갇힌 처지였고, 지금은 여기 독일에서 갇혀 있다. 마찬가지 상황이다. 나는 사전에 허가를 요청하지 않고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 난민들은 실제로 어떤 숙소에서 얼마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보통 망명 신청 절차에 따라 숙소가 배정된다. 독일 영토에 들어온 난민이 맨 처음 가게 되는 곳은 ‘도착센터’ (arrival center)다. 국경 지대를 비롯해 베를린, 뮌헨과 같은 대도시 공항과 기차역에 있는 이 센터에서 지문 채취 등 신원 등록을 하게 된다.

 

등록 후 도착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은 1단계 수용시설(reception facility)에 배정된다. 배정 기준은 출신 국가, 동반 가족 유무, 각 주별 할당 현황 등이다. 원칙적으로는 6개월까지 1단계 숙소에 머물지만, 다음 단계 시설에 자리가 없거나 망명 가능성이 낮을 경우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내는 경우도 많다. 난민 유입이 과열되었던 2015-2016년에 동원할 시설이 부족해서 공공기관이나 학교 체육관, 공터에 세운 대형천막촌이 긴급 쉼터 역할을 했다. 지금도 1단계 시설에서 지내는 난민들의 생활의 불편과 고통이 가장 크다.

 

2단계 숙소는 전문수용시설(competent reception facility)로 시/군의 재량으로 마련하는데, 기존 시설을 임대-매입하거나 새로 짓기도 하고 사설 숙박업소에 위탁하기도 한다. 숙소가 필요한 난민들과 일반 가정집을 매칭하고, 이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편 지역정부도 있다. 2단계에서는 음식, 현금, 의류, 의료서비스, 개인위생 및 생필품도 숙소와 함께 제공된다.

 

3단계 연결숙소(connection accommodation)를 지원하는 남서부 바덴-뷔템베르크(Baden-Württenberg) 주에서는 난민 가구별로 자율성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소규모 독립 주택을 보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대부분 주가 2단계까지만 시설을 구분하고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 등의 대도시에서는 심지어 1단계만 운영한다.

 

한편, 화자가 불편을 호소하는 이동권 관련 현실은 어떨까? 원칙적으로 난민들은 행정구역 상 숙소가 위치한 구역에서만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가 있어 그 밖으로 외출하거나, 2-3일 단기 여행을 가는 것은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일에 남을 가능성이 적은 망명 신청자들에게는 이렇게 제한된 이동권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망명 가능성이 높은 난민들은 3개월이 지나면 독일 전역으로 확대된 주거 및 이동권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온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 나는 떠난다는 얘기를 단 몇 명에게만 했다. 직장 동료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사우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세상에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민 심사 당국은 내가 겪은 일에 대한 증거를 달라고 한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신분증, 기억속의 사건들, 여권-을 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모국을 급히 떠나올 때 그동안 겪은 일의 증거를 모으지 않는다. 그냥 떠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처지가 어떤지는 모두가 안다. 나는 떠날 때 오빠의 서명이 필요했고 여행 허가 서류도 있어야 했다. 이것들이 증거 아닌가?

 

그들은 내 수중에 돈이 꽤 있다는 것은 알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돈은 있다. 나는 내가 난민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뜻밖에도 내 신청서는 거부되었다.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심사 당국이 공정하고 논리적이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크나큰 실망 뿐. 난민 요청이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국이다. 따라서 사우디 사람이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8월, 난민 심사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끔찍한 하루였다. 지금 나는 항소중이다.

 

[※ 독일 난민법에서 규정하는 난민(refugee)을 보다 엄밀하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망명 희망자(asylum seeker):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나 아직 서류 접수를 하지 않은 자
-망명 신청자(asylum applicant): 망명 심사 및 행정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
-4가지 형태의 난민보호에 따른 분류:
1) 망명자: 3년 체류권 보유, 총 거주 기간 3-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제한 없는 노동 및 가족재결합 가능 
2) 난민 보호(refugee protection) 대상자: 망명자와 동일한 조건 
3) 보충적 보호(subsidiary protection) 대상자: 1년 체류권, 이후 2년씩 연장 가능, 총 거주 기간 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노동권 보장, 가족재결합 불가능 
4) 강제송환금지(national ban on deportation) 대상자: 최소 1년의 체류권, 이후 1회 이상 연장 가능, 총 거주 기간 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사전허가를 전제로 노동 가능, 가족재결합 불가능

 

이를 바탕으로 보면, 망명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난민 지위는 지속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권리가 보장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 최초 망명 신청에서 탈락해 재심을 청구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망명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 중 하나의 난민 지위로서 체류권을 연장해왔을 것이다. 실제 망명 성공률은 20-30%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는 직장에 다녔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기량을 향상시키고 공부를 해야 한다. 사우디에서 딴 자격증이 여기서 인정될지 아닐지도 모르겠다. 만약 된다 해도 그 동안 뒤쳐진 것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력 인정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을 아주 많이 했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는 않다. 2년 동안 일을 안하다보니 그 전에 얼마나 초과노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뭔가를 실제로 하고 있을 때는 그게 비정상이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제 뒤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러고 살았지?” “일을 지나치게 많이 했어.”

 

그저 기다리고 있는 삶, 이게 사는 건가?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군 막사가 있었던 지역 할버슈타트(Halberstadt)로 보냈다. 나는 다 잘 될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한두 달은 잘 버텼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러고 나서는 여기로 왔고, 거의 2년이 되었다. 이 숙소에 몇 명이 같이 사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답할 수 없다. 사람들 이름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그저 기다리고 있다. 이게 사는 건가? 잘 모르겠다. 보통 인생이라고 하면 난민숙소에서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나는 그냥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밤낮을 같은 장소에서. 지금까지는 희망이 없었다.

 

숙소의 관리자 누구나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다. 경찰도 들어올 수 있다. 그들은 강제 송환하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때로는 찾는 사람들이 이미 떠나고 없을 때도 있다. 한번은 방안에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껴 자다가 깼다. 혼자였던 나는 겁에 질렸다. 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말해주지 않고 여권만 요구했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처음 있었을 때, 나는 마약 불심검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누군가를 강제 송환하러 왔었다는 것이다.

 

[※ 많은 난민들이 ‘강제 송환’(deportation)이라는 행정처분에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사실 송환 조치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앞서 살펴본 난민 케이스 네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을 때만 송환일자와 함께 난민 불인정 고지가 나간다. 당사자는 법원에 최소 1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심 결과 역시나 불인정인 경우에 망명 신청자가 송환일자가 지나도 출국하지 않을 때 이민당국이 경찰력을 동원해 연행한다. 난민들의 심리적 어려움은 따라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에 주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사람의 의식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관념을 중심으로 하는데, 내일의 자기 삶을 예상하지도 계획할 수도 없는 것은 큰 혼란이자 고통인 것이다.]

 

다른 날은 나의 변호사가 브레멘으로 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독일어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독일 친구에게 그 편지를 보여줬다. 변호사는 나와 독일어로만 얘기한다. 나는 독일어를 조금밖에 못한다. 친구가 편지를 보고 그 사람과 얘기하고 나서 내게 설명해줬다. 편지 내용은 브레멘에 가야 하니 이틀짜리 외출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독일 친구가 나서서 외국인청과 실랑이를 벌인 다음에야 외출허가가 나왔다. 친구가 없었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 성격이다. 나는 좀 고립된 사람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항상 무리지어 다닌다. 자기들끼리 모임이 있고, 나는 항상 외국인이다. 나는 외국인청과 학교와 숙소만 오간다. 외국인청은 난민들에게 정식 학업을 허용하지 않지만, 유로슐레(Euro-Schule; 난민 대상으로 문화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사설 기관. 정부 지원을 받음)에는 다닐 수 있다. 숙소에는 인터넷이 없다. 있었더라면 독일어 온라인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여기 인터넷이 깔린다면 15-20유로 가량을 우리보고 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언어 때문에 독일 사회에 연결될 수가 없다. 하지만 단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가까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언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화와 언어권에서 온 사람들과 사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다. 내게는 이집트 채널이 나오는 티브이가 있다. 이집트 방송은 좀 우스꽝스럽다. 정치 뉴스도 볼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좀 친숙한 것, 내가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보고 듣는 것뿐이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후에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독일어를 배우거나 번역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도 별로였던 독일어가 더 형편없어 졌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남아있질 않다. 작은 쥐가 된 기분이다. 내게는 이 이집트 티브이 채널과 친구들과 얘기할 페이스북밖에 없다. 나는 이미 감옥에 있다.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이것들뿐이다.

 

얼마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다. 슬픔을 극복해보려고 매일 마셨다. 난민 신청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술을 마실수록 점점 더 우울해지는 걸 깨닫고 최근에는 매일 마시는 것은 끊었다. 이제는 그냥 즐기려고 일주일에 두 번만 마신다. 스스로 조절을 하고 있다는 건 다행이다. 나는 음악을 좀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 나는 와인만 마시는데, 와인을 마시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이 우울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새삼스러울 것 없이, 나는 우울하다. 어쩔 때는 새벽 1시에 일어나 “대체 뭐가 문제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때로는 내가 공항에 가 있는 악몽을 꾼다.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나는 겁쟁이다. 자살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여기서 자유로워질 텐데. 목을 메달 생각도 해본다. 권총을 쓸까도 싶지만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다. 알약도 가능할 텐데, 그것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도 날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데도 사람들은 그냥 살라고 한다. 이 모든 걸 끝내기 위해 달리는 기차 앞에 뛰어들까도 생각해본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여기서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하루하루 서서히 죽어간다. 우리는 늘상 인권을 외치는 프로파간다를 듣는다.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것 따위 없다는 것이, 바로 내 눈 앞의 현실이다.

 

<번역자 노트> 암울한 여성들의 현실을 응원하고 낙관하는 방법

 

독일에 체류하는 여성 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본 프로젝트가 어느덧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앞선 네 여성들은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아 굳건한 의지로 내일의 삶을 그려보는 이들이었다. 부모와 형제자매, 자녀를 돌보는 이들이고 젠더, 민족, 지역에 근거한 억압과 차별에 맞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내가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의 화자는 좀 다르다. 한눈에 알겠다. 이 사람은 삶의 벼랑 끝에 있다. 그녀의 말 마디마다 현재진행형의 불안과 좌절, 우울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 삶을 끝낼지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나는 걱정스럽고 다급한 심정이 되어 자료를 뒤지고,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썼다.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마음을 짐작해 봐야해’, ‘난민숙소는 아직도 정말 그리 열악할까’, ‘난민들의 생활 여건을 속속들이 알아야 제대로 지지도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동안 게을렀어.’ 원문이 발표된 이래(2015년)로 이 사우디 여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알 수 없다면, 이 사람을 좌절케 한 법제도 및 환경이 지금은 더 나아졌는지라도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화자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젠더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노예 상태라고 인식하고 주거, 여행, 교육, 노동, 결혼, 사유재산에 있어 자기 결정권을 찾고자 차라리 난민이 되어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독일에 와서도 자신의 염원이 몇 년째 실현되지 않고, 난민을 보호, 관리, 통제하는 국가/국가 간 시스템에 의해 또 다른 예속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제네바로 상징되는 서구 유럽의 ‘인권’에 배신감도 느낀다. 이는 이미 충분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베를린 대학병원들이 독일의 여성 난민 650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2017년 2월 발표), 응답자의 54%가 일상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불안, 울고 싶은 기분, 슬픔을 느끼는 비율도 각각 80%를 넘었다.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3%였다.

 

독일 난민 관련 당국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여성 난민, 특히 젠더 박해를 사유로 한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과 치료 지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런데 문화 간 심리치료(intercultural psychotherapy)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심리치료사는 환자(내담자)의 출신 문화와 질환, 생애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소통해야 한다. 환자에게 이주 배경이 있는 경우에는 그 문화에 대한 별도의 이해와 더불어 더 개방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로 임해야한다. 이른바 ‘다문화 역량’(intercultural competency)이 부족한 치료사는 모든 것을 문화 차이로 환원시키거나, 반대로 차이를 무시하는 실수를 흔히 저지른다. 이는 결국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이어져 내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또한, 치료사들이 특정 질환과 관련해 익히 알고 있는 환자의 반응패턴(행위, 저항, 방어기제 등)은 상대가 이주민, 특히 난민일 경우 그 특수한 삶의 경험과 문제 때문에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편, 나는 글 속에 나타난 화자의 삶의 공간에도 주목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빛을 쫒아 창문을 바라보지만 그녀에게 보이는 것은 다만 벽이다. 항시 짐을 꾸려놓아야 한다. 항상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숙소 근방으로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전에 허가를 구해야 외출할 수 있다. 항상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예고 없이 방으로 들이닥친 경험을 실제로 했다. 이처럼 화자에게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진정한 집이 없다. 국가라는 관념의 집, 나고 자란 동네와 가옥을 버려야 했던 이 여성은 몇 년째 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집다운 집 없이 살아가는 이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가면서도 자료를 또 찾아본다. 앞서 언급한 연구팀에서는 7개의 소규모 여성 난민 그룹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도 실시했다. 난민 여성들이 자신들의 현재 처지와 희망사항, 미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면접의 주된 내용이었다. 규모가 작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일반 주택 형태의 숙소에서 지내는 여성들은 트라우마 경험에도 불구하고 앞날을 긍정하며 자아실현 욕구를 많이 드러냈다. 반면, 통제가 심한 대규모 단체 수용시설에 머무는 이들은 상황이 정체되었다고 인식하고 기본적인 욕구의 실현에 주로 집중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난민들이 독일 도착 후 최초로 머무는 숙소(arrival center/reception facility)의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잠금장치가 있는 별도의 침실과 성별 분리된 화장실이 표준 규정이 되어야 하며,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한 집에 배정될 경우 취사시설 외에도 별도의 아이돌봄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난민 주거 환경에 대한 담론은 최근 몇 년 사이 독일과 캐나다 같은 적극적 수용 국가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2016년 봄, 독일 연방정부의 관련 부서(German Federal Ministry for Family Affairs, Senior Citizens, Women and Youth)와 유니세프가 최초로 가이드라인(Minimum Standards for the Protection of Refugees and Migrants in Refugee Accommodation Centres)을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난민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보충 조사를 통해 성소수자(LGBTIQ)와 장애인을 고려한 확장 기준안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난민 수용시설의 디자인과 운영, 관리감독과 보호 방안을 다루고 있는데, 성폭력과 인권침해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시설 운영인력에 대한 관리 원칙도 포함했다.

 

이 글을 번역하며 조사를 막 시작했을 때 절박하고 비관적이던 내 마음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비록 각종 문제 해결책들이 아직 연구와 보고서, 소규모 프로젝트에 머물러 있을 지라도 그 뒤에 있는 사람들, 집요한 선의와 성실한 역량을 발휘하는 많은 이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도 오늘, 이 사우디 여성의 삶을 조심스레 낙관해본다. 한숨과 눈물로 찍은 마침표 바깥으로 그녀의 삶은 매순간 쉼 없이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희망의 징표가 없지 않다. 끝을 상상하면서도 음주 습관을 스스로 조절하고, 가망이 없다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꺼낼 힘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더불어 그녀가 남겨두고 온 고국의 여성 동료들의 삶 또한 나는 감히 낙관하고 싶다. “직장 동료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사우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세상에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처럼, 여성들은 수많은 억압과 굴레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체념한 적이 없다. 나와 뭇 독자들에겐 ‘나라면 그런 데서 절대 못 살아’를 연발케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실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꿋꿋이 살고 있다. 우리와 다름없이 다양한 외국 서적과 문화콘텐츠를 접하고, 여행을 다니고 무엇보다 인터넷을 하며 금 밖의 ‘세상물정’을 익힌 그녀들. 답답할텐데, 억울할텐데 그저 가만히 있겠는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거기서도 무시해야할 목소리다. 자기 목소리로 자기 몸으로 직접 헤엄쳐 나오는 수밖에 없다. 사우디 여성들은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하고 또 확인한다.

 

“목소리를 내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우리는 여기 답해야 한다. 두려운 것 압니다. 두려워도 괜찮습니다. 다만 두려움이 침묵이 되게 하지는 마세요. 두려워도 계속 이야기해 봐요, 내가, 우리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 이번 조사에 도움을 준 사비나 라블(Sabine Rabl)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라블씨는 뮤라커(Mühlacker) 군청에서 별정직 난민담당관으로 일하며 해당 지역 ‘3단계 숙소’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The stages of the German asylum prodedure” (Federal Office for Migration and Refugees, 2016) https://bit.ly/2jrU58D

-“Minimum Standards for the Protection of Refugees and Migrants in Refugee Accommodation Centres” (Unicef, 2018) https://bit.ly/2ssXd7y

-“Frauen und Flucht: Vulnerabilität - Empowerment - Teilhabe” (Heinrich-Böll-Stiftung, 2018) https://bit.ly/2kLBlzV

-“Study on Female Refugees: Repräsentative Untersuchung von geflüchteten Frauen in unterschiedlichen Bundesländern in Deutschland” (Die Beauftragte der Bundesregierung für Migration, Flüchtlinge und Integration) https://bit.ly/2BcdEI5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영상]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조용한 혁명(DW) https://bit.ly/2iJoIEn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유의 맛을 보다(DW) https://bit.ly/2HhoWwx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Sukkari Life) https://bit.ly/2suHIvR

-사우디 공주, 여성 인권 문제에 힘을 싣다(Forbes) https://bit.ly/2HitDpY


출처 :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8222&section=s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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