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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알라가 하나님?… 기독교와 이슬람이 다른 10가지

무슬림사랑 2018-09-15 (토) 19:14 1개월전 100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를 설명한 논평을 10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그의 저서 『알라』에서 '알라가 하나님'이란 주장을 하여 기독교 하나님(Jahweh)과 이슬람의 알라(Allah)를 동일시하는 혼란을 야기하였다"며 "이는 복음의 본질을 혼합시키는 사상"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신학자를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가 초청하여 특강을 진행함으로 그의 신학이 건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된다"면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를 아래 10가지로 요약했다.

'알라와 하나님이 같은 신'이란 주장은 유일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단사상이다.
한국교회는 기독교(하나님)와 이슬람(알라)의 차이를 교인들에게 분명하게 교육시켜야 한다.

지난 2018년 5월 26일과 27일 새문안교회의 초청으로 볼프(Miroslave Volf)교수가 방한하여 번영의 삶에 대해서 특강을 하였다. 그의 저서 공적 신앙, 배제와 포용 등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볼프 교수는 그의 저서 『알라』에서 '알라가 하나님'이란 주장을 하여 기독교 하나님(Jahweh)과 이슬람의 알라(Allah)를 동일시하는 혼란을 야기하였다. 이는 복음의 본질을 혼합시키는 사상이다. 이러한 신학자를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가 초청하여 특강을 진행함으로 그의 신학이 건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된다. 그리하여 샬롬나비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를 명확하게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유사성도 있지만 그 차이점이 확연하다. 그런데 볼프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점 접근"으로 배타주의 입장을 취하지 말고 "유사성 접근"으로 포용주의를 제안한다. 이것은 유사성의 동질화로 특수성의 일반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다분히 정치신학적인 다원주의 입장이다. 오히려 두 종교의 유사성을 선교적 접촉점으로 활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영원한 진리는 타협될 수 없다. 알라는 하나님이 아니다. 알라는 중동 쿠라이쉬 부족이 섬긴 달신(Moon god)일 뿐이다.


1. 정경이 다르다. 이슬람의 코란과 기독교의 성경은 전혀 다르다.

이슬람의 경전은"4개의 거룩한 책"으로 ①"타우라"(Tawrah,모세오경), ②"자브르"(Zaboor, 다윗의 시편), ③"인질"(Injeel, 신약), 그리고 ④"꾸란"(Quran)이다. 이 중에서 "꾸란" 만이 현존하는 최종 최고의 경전이다. 그들은 구약을 유대인이, 신약을 기독교인들이 변질시켰고 꾸란이 완성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경전은 이슬람이 생성되기 이전에 카르타고 공의회(A.D. 367년)에 최종 결정된 바와 같이 성경 66권뿐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따르고 있고 이슬람은 이를 거부한다. 정경이 다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2. 신론이 다르다. 알라는 중동지역의 토속적 단일신이나 야웨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1) 알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공격한다. 알라는 단일인격적 유일신론(unipersonal monotheism)의 신이고 하나님은 삼인격적 유일신론(tripersonal monotheism)의 하나님이다. 그 정체성이 다르다. (2) 알라는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 알라는 아내나 아들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될 수도 없다. 그들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단순히 육체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시고 성자 예수님은 아들이고 성도들은 자녀들이다. (3) 알라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다만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며 벌을 내리는 공포의 신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오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이시다.    

3. 기독론이 다르다. 이슬람은 예수를 단지 선지자로 보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1) 이슬람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한다. 꾸란에 의하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심각한 신성모독이고 예수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말하고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요 적그리스도임을 선언한다. (2) 꾸란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요 10:30). (3)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4) 이슬람은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 중생, 칭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과 중생과 칭의를 말한다. 오직 예수만이 유일하신 구원자이시다. (5) 이슬람에서는 예수도 피조물에 불과하다. 예수도 첫 사람 아담과 같이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고 마지막 날에 멸망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시다.

4. 구원론이 다르다. 이슬람은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나 기독교는 은혜구원론을 설교한다.

이슬람의 구원론은 행위구원론이다. 알라가 심판 날에 인간의 모든 행위를 저울에 달아 계산하여 구원을 결정한다(Q. 7:8,9; 21:47). 알라는 선행을 사랑하며 이에 영원한 상을 약속한다(Q. 2:195; 35:29; 10:6-11, 26). 특별히 순교는 가장 큰 보장이며 알라의 심판을 받지 않고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한다. 알라는 죽음 중에서도 성전(聖戰, 지하드)으로 인한 죽음을 더욱 사랑한다. 원죄 또한 부정한다. 하지만 성경은 원죄를 말하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는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5. 천사론이 다르다.

이슬람은 천사를 자유의지 없는 노예로 보나 기독교는 자유의지의 인격으로 본다.  꾸란에서 천사는 자유의지가 없다. 그래서 타락 할 수도 없다. 다만 알라가 명령한 대로 거역하지 않고 엄격하게 순종할 뿐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천사도 자유의지가 있고 타락 할 수 있다.

6. 선지자론이 다르다. 이슬람은 예수를 선지자중 하나로, 무함마드를 최종 선지자로 본다.

꾸란은 28명의 선지자를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아담, 아론, 다윗, 솔로몬, 욥, 여로보암, 세례자 요한, 예수, 무함마드가 포함되어있다. 예수님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고, 선지자들 중에서 최고 최종 선지자는 무함마드라고 한다. 선지자는 알라의 뜻을 전하는 단순한 인간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구원의 중재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기독교의 선지자 범주와 기준이 다르다.     

7. 종교론이 다르다. 이슬람은 증오의 종교나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꾸란에 의하면 타종교인들은 다 지옥 간다. 특히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은 무슬림들을 배신자로 만드는 자들이다. 그래서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으면 안 된다.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최악의 피조물이며 지옥행이다. 사실상 기독교를 부정하는 이슬람 유일사상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알라와 같다고 하면서 신구약 성경은 진리이고 이를 아랍세계에 확증시키기 위하여 알라가 무함마드를 보냈다고 한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도 한다. 마치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인 것처럼 드러낸다. 이것이 이슬람의 이중성이다. 이슬람에는 두 얼굴이 공존한다.

8. 전쟁관이 다르다. 이슬람은 전쟁은 폭력의 전쟁이나 기독교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꾸란은 비무슬림들과는 성전(聖戰 Jihad)을 하라고 명한다. 무슬림을 이슬람교에서 떠나게 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포획하거나 살해하라고 가르친다. 비무슬림들과는 싸워서 무슬림들의 엄격함을 보여주라. 박해가 없고 종교가 단지 알라를 위한 것이 될 때까지 성전을 치루라. 이슬람 지하드의 4단계는 평화의 단계로 시작하여 방어의 단계, 투쟁의 단계, 그리고 지하드를 통한 정복의 단계이다. 꾸란에 의하면 살인은 정당하다. 일상에서 그들의 선한 모습이 어느 순간에라도 잔인한 모습으로 돌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하지만 성경의 전쟁관은 다르다. 구약의 전쟁사도 하나님의 공의와 신약의 예언적 의미를 특수성으로 참고 할 때에 성경은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전쟁이 아닌 하늘의 악한 영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말한다.         

9. 선교관이 다르다. 이슬람은 이슬람 국가건설이 목표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가 목표다.

이슬람의 선교목적은 이 땅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나라이다. 그런 나라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이 정당화 된다. 거짓말, 폭탄, 자살, 테러, 전쟁(Jihad)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다. 그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이다(롬 14:17).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독교 선교관이다.  

10. 결혼관(남녀관)이 다르다. 이슬람 결혼은 일부다처제나 기독교는 일부일처제다.

이슬람의 결혼관은 일부다처주의이다. 남자는 부인을 4명까지 허락한다. 무함마드에게는 아내의 수를 제한하지 않는다. 또한 꾸란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이다.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여성에게는 충고, 잠자리 거부, 가벼운 구타(beat them)로 다룰 것을 명한다. 그리고 남자가 아내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고 다만 지참금만 요구하지 않으면 된다. 결혼 할 때는 이슬람 개종이 필수이다. 성경은 구약의 일부다처주의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일부일처를 원칙으로 한다. 남녀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인격적인 평등을 말한다.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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